December 07, 2025 . 아름다운교회 함께 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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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수요일 저녁예배에 에베소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깨닫게 된 것을 한번 더 여기서 나누려고 합니다. 수요일에 오셨던 분들과만 나누기에는 너무 아쉬움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함께 함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요즘 수요일 저녁예배에서는 에베소서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 있는데 지난 주에는 3장의 말씀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중에서 6절 말씀을 보다가 함께 하는 것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6절 말씀은 이렇습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이 말씀에서 “함께”라는 말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방인들에는 우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방인인 우리가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상속자가 되고, 지체가 되고,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도 감격스러운 사실인데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보이는 것이 “함께”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교회는 “함께” 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나오는 우리들은 “함께” 하는 법을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불완전한 우리들임을 감안해 볼 때 우리는 “함께”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교회를 나온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이죠. 그렇습니다. 우리는 “함께”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교회를 나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죄로 인해 “함께”하는 법을 잊어버렸습니다. 죄로 인해 이 부분에 대한 감각이 아예 부패해져 버린 것이죠. 죄는 인간을 나밖에 모르는 존재로 타락시켰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서로 “함께”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나옵니다. 아니,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함께”하는 법을 배우라고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함께”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교회를 나옵니다.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함께”하지 않거나 “함께”할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이 모든 은혜를 받은 자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복음으로 구원을 받은 우리들은 “함께” 이 모든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이것을 잘 할 수는 없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과 육신의 법이 날마다 싸우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우리는 약간은 밀릴 수 있으나 결코 패배해서는 안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로 함께 할 수 있도록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허무시고 우리 사이에 존재하던 담도 완전히 허물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가능해졌습니다. 그때 우리도 십자가에 함께 죽었습니다. 나밖에 모르던 나의 삶, 이기적이던 나의 삶, 사랑을 주기보다 받기만 하려고 하던 나의 삶, 이 모든 것이 십자가에 못박힌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함께”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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